[이희태의 '반려미생물' 톡톡] 먹지 마세요 피부 미생물에게 양보하세요
한때 ‘먹지 마세요 피부에 양보하세요’라는 화장품 광고 문구가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화장품을 피부에 살고 있는 미생물에게도 양보해야 할 듯 하다.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피부에는 수많은 미생물들이 자리 잡고 있는데, 이들이 피부 건강에 밀접하게 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부는 우리 몸에서 부피와 무게 면에서 가장 큰 장기다. 보호, 체온조절, 면역, 배설 등 필수적인 생리 기능을 갖는 중요한 신체 부위다. 하지만 이보다는 아무래도 피부는 탄력, 주름, 여드름, 건조함 등 미용 부분에 더 큰 관심이 가는 경우가 많다. 놀라운 점은 이러한 필수 기능과 미용 모두에 있어 피부 미생물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장과 마찬가지로 피부에 살고 있는 미생물들을 이해하고 잘 살 수 있게 관리하는 노력은 건강한 피부를 갖기 위해 당연하다 하겠다.
앞서 신체 부위 별로 살고 있는 미생물 군집의 구성은 모두 다르다고 언급한 바 있다. 피부 또한 마찬가지다. 그리고 한 사람이 태어나서 영아기부터 노년기까지 생애 주기에 따라 마이크로바이옴의 뚜렷한 변화를 보인다. 예를 들어, 청소년기 때는 호르몬 분비로 인해 여드름과 관련된 특정 미생물이 증가하고, 노년기에는 미생물 다양성이 감소하는 특징을 일반적으로 보인다. 또한 최근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국내 연구진의 조사에 따르면, 피부 특성과 노화 정도에 따라 피부 타입을 분류할 수 있었고 피부 마이크로바이옴 특징에 따라 이를 예측 할 수 있다고 보고되었다.
피부는 외부로 항시 노출 되어 있다 보니, 물로 씻거나 소독을 통해 제거되기 쉽고 다양한 외부 환경과의 접촉으로 수시로 변화하기 때문에 특정한 생태계가 형성되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사람마다 다른 피부 마이크로바이옴을 가지고 있고, 이는 피부 상태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최근 다양한 연구를 통해 이를 확인 할 수 있다. 예컨대, 특정 유익균을 피부에 적용하거나 이런 유익균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어떤 물질을 처리하면 다양한 피부 질환이 개선되었다. 뿐만 아니라, 피부 마이크로바이옴의 변화를 통해 피부의 수분, 탄력, 주름 등의 개선이 유의하게 관찰된 긍정적인 결과들도 꾸준히 보고되고 있다.
이렇게 축척된 연구 성과들은 스킨, 바디, 두피 등 다양한 뷰티 시장에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기술이 적용된 제품들을 출시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 이를 크게 요약하면, 기능성을 갖는 살아있는 균주를 함유하거나, 피부에 존재하는 유익균들이 잘 살 수 있게 도와주는 성분을 배합하거나, 유익균들의 만들어 낸 대사 산물을 제품에 포함시키는 방법으로 구분할 수 있다. 피부에 살고 있는 미생물은 더럽고 비위생적이어서 무조건 살균해야 하는 존재로만 볼 것이 아니라, 피부에 유익균들이 잘 살 수 있게 균형을 맞춰 줄 필요가 있다 하겠다.
뷰티 케어 제품을 선택하는데 있어 단지 건성인지, 지성인지등의 피부 타입을 고려했던 과거와 달리 앞으로는 개인별 피부 미생물을 진단하고 각각의 데이터를 분석해 맞춤형 화장품을 제안하는 시대가 올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시대에 가장 예쁜 모델이 등장하는 광고가 아닌 다양성과 개성들이 강조된 마케팅으로의 변화가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때론 아무리 비싼 화장품이나 외용제를 사용하더라도 피부 상태가 개선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 흔히 ‘피부병은 속병’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피부가 독립적인 단순한 외피가 아니라 몸 속 상태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아토피 피부염, 건선, 여드름 등 다양한 질환이 면역이나 호르몬 등의 전신 건강의 문제로 발생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의 불균형은 염증을 유발하고 대사에 문제를 일으켜 다양한 피부 질환을 악화시킬 수 있다. 실제로 프로바이오틱스 섭취나 식이 변화로 장 환경이 좋아졌을 때 다양한 질환의 증상이 개선되었다는 임상 연구들이 이를 입증해준다.
우리는 매일 거울을 마주하지만 정작 피부 위에 존재하는 수많은 미생물들은 보지 못한다. 하지만 피부 미생물 생태계는 피부의 건강과 아름다움을 지켜주는 핵심 파트너이다. 앞으로 피부 건강을 위한 관리는 단지 바르고 지우는 차원을 넘어 피부를 살아있는 미생물들의 생태계로 바라보며 이들의 균형을 유지하는 노력 또한 포함되어야겠다.
<이희태 약사>
-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보건학 박사
- 건일약국 대표약사
- 삼육대학교 약학대학 책임연구원
- 케프리옴 대표
- 유튜브 약드라이브 채널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