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텍스 DNA ‘큐리에이터’, 동물실험 없이 FDA 승인…신약개발 판도 바꾼다”
[인터뷰] 큐리에이터 공동 창업자 백규석 대표
[더바이오 강인효 기자] 신약 개발 과정에서 임상에 진입한다는 것은 곧 사람에게 약물을 투여하는 단계에 들어섰다는 의미다. 초기 임상에서 안전성이 가장 먼저 검증돼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때문에 제약사는 임상에 앞서 동물실험 등을 통해 독성과 안전성을 면밀히 확인한다.
그러나 동물실험에서 안전성이 확보됐다고 해서 해당 약물이 사람에게서 동일한 효능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생물학적 환경 차이로 인해 비임상 단계에서 확인된 약효가 임상에서 재현되지 않는 사례는 흔하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임상 진입 전 단계에서 ‘인간과 유사한(human-relevant)’ 환경에서 약물 반응을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을 확보할 경우, 임상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 본사를 둔 ‘큐리에이터(Qureator)’가 주목받고 있다. 큐리에이터는 ‘오가노이드(organoid, 인공장기)’를 기반으로 한 병용요법 데이터를 바탕으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임상시험계획(IND) 승인을 받을 수 있게 해준 세계 최초의 인공지능(AI) ‘장기칩(organ-on-a-chip, 오간온어칩)’ 플랫폼 기업이다.
국내 바이오기업인 신라젠은 지난 10월 6일 FDA로부터 자사의 항암제 후보물질인 ‘BAL0891’과 글로벌 제약사 비원메디슨의 면역관문억제제(anti PD-1)인 ‘티슬렐리주맙(Tislelizumab)’을 병용하는 임상시험계획(IND) 변경 승인을 받았다. 앞서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도 위의 데이터 기반으로 9월 9일 해당 IND를 승인한 바 있다. 이로 인해 신라젠은 ‘BAL0891과 티슬렐리주맙’ 병용요법의 안전성과 최적 용량을 확인하는 임상 연구를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번 임상 승인의 핵심 기반은 큐리에이터가 개발한 ‘브이타임(vTIME, vascularized Tumor Immune MicroEnvironment)’ 기술이다. 이 플랫폼은 인간 혈관 구조와 면역세포 반응을 실제와 유사한 형태로 구현한 3차원(3D) 종양 오가노이드 기반 모델로, 해당 병용요법의 효능을 전임상 단계에서 검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최근 방한한 백규석 큐리에이터 대표는 <더바이오>와 만나 “세계에서 처음으로 동물 모델을 사용하지 않고, 자체 ‘휴먼 렐러번트(human-relevant)’ 질환 모델 기반의 데이터만으로 병용요법의 효능을 입증해 FDA의 승인을 받았다”며 “이번 성과는 규제기관과 혁신 기업이 협력해 전임상 단계에서의 동물실험을 인간 기반 시험으로 전환할 수 있음을 입증한 사례”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지난 수십 년간 국내 신약 개발 중 임상 실패율은 80~90%로 매우 높았으며, 암에 대한 임상 실패로 발생하는 비용 또한 연간 60조원에서 70조원에 달한다”며 “큐리에이터는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 새로운 신약 개발 패러다임을 제공하는 회사로, 천문학적인 비용과 시간을 줄이고 임상 실패율까지 현저히 낮추는 혁신적인 플랫폼으로 신약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백 대표는 <더바이오>와의 인터뷰를 통해 회사의 창업 스토리부터 비전, 앞으로의 전략까지 구체적으로 소개했다.
◇‘버텍스 성공 스토리 DNA’로 창업…핵심은 ‘휴먼 렐러번트(human-relevant)’
큐리에이터는 ‘휴먼 렐러번트’ 기반의 AI 신약 후보물질 발굴(drug discovery) 기업이다. 오가노이드와 오간온어칩 등 ‘인간과 유사한’ 환경에서 생성된 데이터를 활용해 동물실험 없이 약물 반응을 예측하는 플랫폼을 구축했다. 회사는 이렇게 확보한 휴먼 렐러번트 데이터를 자체 AI 모델에 학습시켜 신약 개발 효율과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2019년 미국 샌디에이고에 설립된 큐리에이터는 올해로 6년차를 맞았다. 창업 주축 멤버들은 모두 글로벌 바이오텍인 버텍스파마슈티컬스(Vertex Pharmaceuticals, 이하 버텍스) 출신으로 구성돼 있다. 버텍스는 오가노이드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오가노이드 분야의 개척자이자 ‘오가노이드의 아버지’로 불리는 한스 클레버스(Hans Clevers)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Utrecht University) 의대 교수가 가장 먼저 협업을 진행한 제약사가 버텍스다. 버텍스는 전임상 단계에서 효능을 측정하기 위해 생체 내 환경을 모사한 ‘휴먼 인비트로 모델’을 활용하고 있다. 클레버스가 개발한 ‘장 오가노이드(intestinal organoid)’를 신약 후보물질 발굴(drug discovery)에 실제 적용한 최초 사례로 꼽힌다.
백 대표는 “큐리에이터 창업팀은 이러한 버텍스의 경험을 공유한 핵심 인력들로 구성돼 있다”며 “버텍스에서의 경험이 DNA처럼 녹아 있어 초기 단계부터 오가노이드·조직공학·바이오공정·AI를 통합한 플랫폼을 설계할 수 있었고, 이 점이 경쟁사와 차별되는 중요한 강점”이라고 말했다.
백 대표는 버텍스와 호스피라(Hospira) 등에서 25년 이상 바이오메디컬 연구와 진단·의료기기 혁신 분야를 이끌어온 전문가다. 풍부한 산업 경험을 바탕으로 큐리에이터의 기술·사업 방향을 총괄하고 있다. 유상희 박사는 버텍스와 타키온(Tachyon) 등에서 항암제 발굴 및 전임상 개발을 수행하며, 20년 이상 종양학 분야 연구 경력을 쌓아왔다. 큐리에이터의 생물학 연구 조직을 이끌며 플랫폼 기반 항암제 개발을 담당한다.
최고과학책임자(CSO)를 맡고 있는 브랑카 미트로비치 박사(Branka Mitrovic, M.D.)는 버텍스와 바이엘(Bayer) 등에서 30년 이상 유전질환·자가면역질환·신경질환 분야의 신약 개발을 주도해 온 연구 리더다. 큐리에이터의 신약 발굴 전략과 과학적 방향성을 총괄한다. 성 리 리우 박사(Tsung-Li Liu, Ph.D.)는 버텍스와 미국 하버드대 의대(Harvard Medical School)에서 12년 이상 바이오테크·현미경·바이오메디컬 엔지니어링 연구를 수행한 기술 전문가다. 장기칩 및 휴먼-렐러번트 모델 구현을 위한 핵심 기술 개발을 책임지고 있는 최고기술책임자(CTO)다.
큐리에이터는 백규석 대표 외에 공동 창업자가 한 명 더 있다. 바로 전누리 서울대 기계공학부 교수다. 전 교수는 한국에서 ‘큐리오칩스(Curiochips)’라는 바이오텍을 2016년 창업했다. 큐리오칩스는 서울대 연구실창업 벤처로 3차원(3D) 혈관구조를 체외에서 모사하고 이를 활용해 인체장기칩 플랫폼을 제공하는 스타트업이다. 서울대기술지주에서 투자를 받았고, 스파크랩·미래에셋캐피탈 등 초기 투자사들이 시드 단계에 참여하며 기반이 갖춰졌다. 당시 회사는 주로 하드웨어 중심의 플랫폼 기업으로 출발했으나, 공동 창업자로 합류한 경영진이 인비트로 모델·데이터·AI를 결합한 ‘3박자 통합 전략’을 제시하며 방향성이 전환됐다. 이후 큐리오칩스는 기존 주주들이 큐리에이터 지분을 보유하는 형태로 지배구조를 재편하며, 큐리에이터의 100% 자회사로 편입되는 이른바 ‘플립(flip)’ 구조 전환을 완료했다. 플립은 국내 법인을 해외 모회사 산하로 두는 방식의 지배구조 재편을 의미한다.
백 대표는 “창업 초기의 하드웨어 역량에 휴먼 렐러번트 질환 모델과 AI 기반 신약 발굴 요소가 더해지면서 ‘휴먼 렐러번트 AI 기반 신약 발굴 및 개발 기업’으로 진화했다”고 말했다.
◇“동물실험 규제 완화, 신약 개발기업 비임상 전략 변화 예상…‘인간 유사 데이터’ 부각”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지난 4월 단일클론항체(mAb) 관련 심사에서 동물실험 요구사항을 면제하는 새로운 지침을 공개했다. 이에 따라 단일클론항체 개발 과정에서 필수로 요구되던 동물실험 규제가 완화되며, 이런 노력은 모든 신약 개발에도 확장될 것으로 예상돼 개발사들의 비임상 전략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또 미국 국립보건원(NIH)도 최근 ‘새로운 정책 방향(New Policy Direction)’을 제시하며, 동물실험을 대체할 ‘뉴 어프로치 메소드(New Approach Methodologies, NAMs)’ 활용을 적극적으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NIH는 이러한 NAMs 기반의 평가체계가 기존 동물실험을 보완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 ‘대안시험(Alternative Methods)’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백 대표에 따르면 미국 NIH가 제시한 대안시험 체계인 NAMs는 크게 3가지 축으로 구성된다. 첫째는 세포·조직 기반의 ‘인비트로(in vitro)’ 모델, 둘째는 컴퓨터 기반 분석을 활용하는 ‘인실리코(in silico)’ 모델, 셋째는 유전체·전사체·단백체 등 고차원 데이터를 활용한 ‘뉴오믹스(New-omics)’ 접근법이다. 이들 세 분야는 모두 동물실험을 대체하거나 보완하는 핵심 기술로 꼽힌다.
다만 인실리코 모델은 오랜 기간 개발이 이어져 왔음에도 실제 성과는 제한적이라는 평가다. AI 기반 신약 설계(AI-based drug design) 역시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지난해까지 AI가 설계한 화합물이 모든 임상 단계를 통과해 의미 있는 성과를 낸 사례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백 대표는 “최근 몇 년간 AI 기반 신약 발굴(AI-based drug discovery)을 통해 대규모 후보물질이 생성되고 있는데, 독성 예측 등 비임상 단계에서 AI 기술의 정확도가 일부 개선된 데 따른 결과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며 “안전성(독성) 측면에서는 AI가 점진적으로 진전을 보이고 있지만, AI가 초기에 기대됐던 ‘효능 예측’ 영역에서는 여전히 한계가 뚜렷하다는 지적도 나온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NAMs 기술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지만, 접근법마다 해결해야 할 구조적 한계가 여전히 존재한다”며 “인비트로 모델의 재현성(reproducibility)의 불안정성, 인실리코 모델의 예측 정확도 편차, 오믹스 기반 데이터의 해석 난이도 등이 대표적인 과제로 꼽힌다”고 덧붙였다.
백 대표는 오가노이드와 오간온어칩 등 인비트로 모델은 모두 환자 유래 세포를 활용해 실제 인간 조직 환경을 모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 단일 세포 기반 실험보다 진일보한 평가 플랫폼이라고 밝혔다. 인비트로 모델이 인간 생리 환경을 더 정교하게 반영한다는 장점은 분명하지만, 산업 적용을 위해서는 표준화와 데이터 재현성 확보가 필수라고 백 대표는 강조했다.
인비트로 모델의 두 번째 한계는 스케일업의 어려움이다. 신약후보 발굴 단계에서는 대량의 실험 반복이 필요하지만, 현재 인비트로 기반 모델은 재현성이 낮아 실험 규모를 확대했을 때 신뢰할 만한 데이터를 일관되게 확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된다. 백 대표는 “오가노이드나 오간온어칩 기술이 정교함은 갖췄지만, 대규모 신약 발굴 및 개발 환경에서 요구되는 표준화·일관성 측면에서는 여전히 한계가 뚜렷하다”고 평가했다.
최근에는 인실리코 모델과 오믹스 데이터를 결합한 멀티모달 AI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유전체·전사체·단백체 등 방대한 오믹스 정보까지 학습에 포함해 예측 정밀도를 높이려는 시도다. 하지만 백 대표는 AI 모델의 근본적 한계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현재 많은 AI 신약 설계 플랫폼이 과거 축적된 2차원 세포주(2D cell line) 기반 데이터 즉, 평면 배양 세포에서 생성된 전통적 실험 데이터를 주요 학습 자료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 대표는 “이 때문에 AI가 생성한 후보물질이 실제 인간 생리 환경을 반영하는 휴먼 렐러번트 데이터와 충분히 연결되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효능 예측력이 떨어지는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며 “멀티모달 AI가 지향점이 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입력 데이터가 인간 생체 환경과 괴리돼 있는 한 예측 정확성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에는 조직을 절편 형태로 분석하는 공간유전체학(spatial genomics) 기술이 확산되면서, 단일 세포 수준에서 조직 내 분포와 분자적 특성을 파악하는 연구가 활발해지고 있다”며 “신약의 효과가 결국 ‘시스템 레벨 인터랙션(system-level interaction)’ 즉, 여러 세포·조직·신호 경로가 얽힌 복합적 생체 반응에서 결정되는 만큼 단일 세포 차원의 정보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고 덧붙였다.
분석이 세포 단위(cell-level)에 머물러 있는 한, 실제 인체에서 나타나는 조직(tissue)·시스템(system) 단위의 복합적 상호작용을 온전히 반영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따라서 AI 모델의 예측력을 높이려면 실제 생체 환경에 더욱 근접한 ‘휴먼 렐러번트 조직 모델’을 기반으로 데이터를 구축해야 한다는 게 백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세포 기반 모델은 유용하지만, 약물의 작용은 결국 조직과 장기 간 상호작용이 얽힌 시스템 레벨(system-level)에서 결정된다”며 “AI 예측 모델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보다 휴먼 렐러번트한 조직 모델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큐리에이터는 스케일업이 가능하면서도 고정된 품질의 데이터를 반복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휴먼 렐러번트 질병 모델을 확보한 것이 강점이다. 백 대표는 “이 플랫폼은 일관된(consistent) 데이터 생산을 가능하게 해 인비트로 모델의 재현성 문제와 기존 인실리코·오믹스 기반 접근의 한계를 동시에 보완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비트로 모델의 가장 큰 한계로 지적돼온 스케일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현성 높은 데이터를 반복 생산할 수 있는 전용 하드웨어와 자동화(automation) 시스템을 구축했다”며 “자체 개발한 휴먼 렐러번트 질병 모델을 통해 안정적인 품질의 실험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생성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생성된 데이터는 회사가 개발 중인 AI 신약 설계 플랫폼에 지속적으로 투입된다”며 “여기에 더해 환자 유래 샘플에서 얻은 멀티오믹스 데이터도 함께 통합해 모델의 예측 정밀도를 높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즉 큐리에이터가 자체 개발한 휴먼 렐러번트 질병 모델은 향후 AI 기반 신약 설계 플랫폼의 핵심이 될 것이라는 게 백 대표의 설명이다. 인간의 실제 생리 환경을 모사한 이 플랫폼 없이는 약물이 인체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예측하는데 필수적인 임상적 함의(clinical relevance)를 충분히 확보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그런 관점에서 앞서 언급한 신라젠의 IND 제출 과정에서 재현성과 신뢰성을 갖춘 인비트로 모델을 확보했음을 증명했다고 백 대표는 밝혔다. 그는 “초기 비임상 단계에서 일관된 데이터 생산 능력을 확보했다는 점이 AI 기반 신약 개발 경쟁력으로 이어질 것”으로 평가했다.
◇“인간 유사 데이터, 외형 모사뿐만 아니라 기능적 반응까지 유사해야”
백 대표는 AI 기반 신약 설계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인간과 최대한 유사한(human-relevant) 데이터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실제 환자로부터 얻는 임상 데이터가 가장 이상적이지만, 한 명의 환자에게서 제한적으로 관찰되는 약물 반응만으로는, 다양한 약물 반응을 재현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인간 생리 환경을 모사한 휴먼 렐러번트 모델을 활용해 실제 환자와 유사한 조건에서 약물 반응 데이터를 적은 비용으로, 빠른 시간에 축적하는 방식이 주목받고 있다. AI가 보다 현실적인 생체 반응을 학습할 수 있도록, 인간에 가까운 환경에서 생성된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게 백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인간 생리 환경을 ‘모사(simulation)’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지만, 더 본질적인 기준은 그 모사 모델이 실제 인간과 얼마나 유사한 결과를 내는가에 있다”면서 “외형적으로 비슷한 구조를 갖추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약물 투여 시 나타나는 기능적 반응까지 인간과 유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따라서 휴먼 렐러번트 모델이 실제로 인간 생리 반응을 얼마나 정확히 재현하는지를 기능적 검증(validation)을 통해 입증해야 한다”며 “모델의 유사성은 결과로 증명돼야 하며, 약물 반응 패턴이 인간 생체 반응과 일치하는지를 체계적으로 검증하는 과정이 필수”라고 덧붙였다.
큐리에이터는 기존 오가노이드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조직(tissue) 수준으로 확장한 플랫폼을 구축했다. 회사는 오가노이드에 혈관구조(vascularization)를 형성시키고, 이 혈관 네트워크를 통해 면역세포(immune cells)가 조직 내부로 자연스럽게 유입되도록 구현했다. 더불어 오가노이드 주변에 기질세포(stromal cells) 등을 포함시켜 실제 종양미세환경(TME)에 가까운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대표적인 게 앞서 언급한 신라젠의 전임상에 활용된 ‘브이타임(vTIME)’ 플랫폼이다.
실제로 큐리에이터는 기능적 검증 과정에서도 의미 있는 결과를 확보했다. 백 대표는 “여러 환자 유래 세포를 활용해 1차 항암치료제(First-line chemotherapy)에 대한 반응을 비교한 결과, 실제 환자의 반응과 모델의 예측이 약 90% 수준에서 일치했다”며 “이 결과가 플랫폼의 과학적 타당성을 입증하는 중요한 근거가 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두 번째 검증은 FDA 승인 항암제들을 대상으로 진행됐다”며 “특정 암종에서는 효과가 없었던 약물들이 존재하는데, 회사는 이러한 약물들을 자체 질환 모델에 적용해 해당 암종에서 약물이 듣지 않는다는 결과를 100% 일치하게 재현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효능이 없었던 약을 약효 없음으로 정확히 판별한 것은 모델의 예측 신뢰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근거”라고 덧붙였다.
큐리에이터는 자체 질환 모델의 기술력뿐만 아니라, 제조·생산 공정 수준에서도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생산 공정에서 높은 재현성과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이 기반에서 생성된 데이터 또한 경쟁 우위를 갖게 된다는 게 백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이러한 고품질 데이터를 학습한 AI 플랫폼 역시 경쟁력을 확보하게 되는 구조”라며 “회사는 ‘제조 역량 → 데이터 품질 → AI 성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체계가 핵심 강점”이라고 밝혔다.
◇“다양한 기업들과 질환 모델 기반 협업 확대…‘플라이휠’ 효과로 데이터 경쟁력 강화”
큐리에이터의 vTIME 모델은 실제 인체 혈관 구조와 면역 환경을 정밀하게 재현한 3D 종양 오가노이드 기술이다. 기존 단순 오가노이드보다 약물 침투·분포·면역 반응을 더 정확히 모사할 수 있어, 전임상 단계에서 임상 예측력을 높인다는 평가를 받는다.
백 대표는 “신라젠의 IND 승인은 항암 병용요법을 검증하는데 동물 모델을 배제하고, 휴먼 렐러번트 질환 모델을 통해 확보한 기능적 효능 데이터만으로 FDA 검증을 통과했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며 “신라젠의 병용요법 개발 과정에서 투여 순서와 용법·용량 설정에도 큐리에이터의 휴먼 렐러번트 모델이 활용됐다”고 말했다.
즉, 약물 A와 B를 어떤 시점에 투여할지, 며칠 간격을 둘지, 어떤 용량으로 병용할지와 같은 핵심 설계 요소를 회사의 질병 모델 데이터를 기반으로 검토해 IND 제출 자료에 반영했다는 것이다.
큐리에이터는 다양한 기업들과 질병 모델을 기반으로 한 협업을 확대하면서 플랫폼 자체의 경쟁력도 자연스럽게 강화되는 ‘플라이휠(flywheel) 효과’가 작동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험과 프로젝트가 누적될수록 플랫폼이 축적하는 데이터의 양과 다양성이 커지고, 성공 사례뿐만 아니라 실패한 실험 데이터(failed data)까지 모두 학습에 활용되기 때문에 AI 모델의 정밀도가 지속적으로 높아진다는 것이다.
백 대표는 “이같은 구조는 신규 표적(novel target) 발굴로 이어지고, 발굴한 표적을 기반으로 다시 신약 후보물질을 설계·검증하는데 활용되며, 임상 단계에서는 환자군 세분화(patient stratification) 전략 수립에도 기여할 수 있다”며 “데이터가 쌓일수록 플랫폼 전반이 강화되는 구조는 AI 신약 개발기업이 갖기 어려운 차별성”이라고 밝혔다.
큐리에이터는 창업 6년 만인 올해 세계에서 첫 번째로 오가노이드 연구 기반으로 FDA에서 병용 임상 승인을 받은 마일스톤을 이뤘다. 현재 회사는 시리즈 B 투자 유치를 계획하고 있다. 앞서 시리즈 A 라운드를 통해 총 26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한 바 있다. 특히 지난해 10월에는 스틱벤처스와 솔리더스인베스트먼트로부터 총 80억원 규모의 시리즈 A-3 투자를 유치했다. 회사는 이를 기반으로 신라젠의 병용요법에 대한 임상 승인 과정을 준비했고, 결국 최초 FDA IND 승인이라는 기념비적인 성과를 거두는 초석이 됐다.
큐리에이터는 이달 미국 메릴랜드 내셔널하버에서 열리는 면역항암학회(SITC) 연례 학술대회 참가해 휴먼 렐러번트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병용요법 데이터와 바이오로직스(biologics) 확장 전략을 주요 메시지로 소개했다.
이번 발표에서는 파트너사인 신라젠의 후보물질과 PD-1 억제제를 결합한 병용요법 데이터가 핵심으로 제시됐다. 회사는 기존 동물모델을 사용하지 않고 자체 질환 모델만으로 효능을 입증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플랫폼의 임상 설계 기여도를 부각시켰다.
또 회사는 이중항체 프로그램 성과도 함께 공개한다. 특히 ‘VEGF x PD-1’ 이중항체는 종양 근처에 VEGF를 결합시켜 종양미세환경에 T세포 유입을 유도하는 기전으로, 최근 글로벌 개발사들 사이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포맷 중 하나다.
큐리에이터는 현재 글로벌 제약사와 새로운 프로젝트를 개시하기 위한 준비를 계획하고 있다. 특히 시리즈 B 투자 유치를 통해 조달하는 자금은 △암의 종류에 대한 플랫폼 확장 △다른 질병 모델로 플랫폼 확장 △파트너사들의 화합물(컴파운드) 밸류업 등을 위해 연구자 주도 임상 등을 통해 해당 플랫폼이 실제적으로 임상에서 작동하는지 검증할 계획이다.
백 대표는 “최근 NIH와 휴먼 렐러번트 플랫폼을 공식 프로토콜 검증 대상으로 포함하는 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다”며 “면역항암제 병용요법 개발에서 큐리에이터의 플랫폼이 활용될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휴먼 렐러번트 AI 기반 신약 발굴 및 개발 플랫폼이 결국 신약 개발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이라며 “이는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고, 그 변화를 누가 먼저 구현하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백규석 대표는 “큐리에이터가 축적하는 휴먼 렐러번트 데이터는 그 변화의 핵심 기반이 될 것”이라며 “이를 통해 임상 성공률을 높이고, 실제 환자에게 도달하는 신약 개발 속도를 앞당기는데 기여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