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을 주면 돈을 받는 곳이 있다. 미국에 있는 오픈바이옴(Openbiome)에서는 지원자의 분변을 기증 받는데, 엄격한 검사와 선별 절차를 거쳐 이를 통과하면 소정의 금액을 지급해준다. 이렇게 선발된 분변은 잘 보관하였다가 질병 치료나 연구용으로 사용된다. 문제는 제공한 똥의 극히 일부만 선발된다는 점이다. 특별하고 귀한 똥이 아닐 수 없다.
똥이 질병 치료에 사용되었다는 역사적인 기록들은 주로 중국이나 중동등 동양권 국가에 주로 남아있는데, 식중독이나 장염등의 치료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서양에서는 20세기 중반 대장염의 치료를 위해 분변을 관장하였다는 보고들이 있었지만 아직 마이크로바이옴의 개념이 부족했던 탓에 큰 주목을 받지 못한 듯 하다. 하지만 분변에는 수분을 제외하면 약 30%는 미생물들이라는 사실을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다.
마이크로바이옴, 즉 미생물 생태계의 역할과 중요성이 보고되면서 건강한 사람의 분변을 환자의 대장에 옮기는 시술은 새로운 치료법으로 발전되고 있다. 이를 분변 미생물 이식술(FMT, Fecal Microbiota Transplantation)이라 부른다. 특정 한 두개의 미생물이 아닌, 분변에 존재하는 미생물 생태계를 통째로 옮김으로써 장내 환경과 기능을 획기적으로 회복하는데 목적이 있다.
FMT는 현재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 감염(CDI)으로 인한 대장염에 국한하여 사용되는데 놀랍게도 완치율이 80~90%로 매우 높다. 기존에 항생제 치료가 높은 빈도의 재발로 완치가 어려웠던 상황을 고려하면 놀라운 수치가 아닐 수 없다. 국내에서도 대형 병원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시술되고 있어 주요한 치료법으로 자리매김 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누구의 분변을 사용할 것인지, 분변마다 동일한 효과를 나타낼 것인지, 분변마다 다른 부작용을 유발하진 않을 지와 같이 고려해야 할 점이 많다. FMT에 사용되는 분변 미생물 균총은 일반적으로 치료제로 사용되는 의약품처럼 규격화 되어있거나 표준화된 공정을 거친 것이 아니고, 아직까지 치료 기전을 명확하게 구체화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치료제로 널리 사용하기까지 넘어야 할 과제들이 많아 보인다.
최근 외국에서는 분변에서 얻은 미생물들을 정제하여 이를 직장에 관장하거나, 캡슐 형태로 먹기 편하게 만들어 신약으로 승인을 받은 사례가 있다. FMT의 한계점들을 극복한 사례로 고무적으로 평가된다. 이는 처음으로 미생물 생태계가 치료의 타깃이 되며 의약품의 성분으로 인정 받았다는 의미가 있고, 더 나아가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약물 개발 및 제조 플랫폼의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이 다양한 질환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렇다면 FMT로 이를 치료할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동물 실험이나 일부 소규모 임상에서 FMT을 통해 비만, 당뇨등의 대사질환이나 자폐 스펙트럼 장애나 파킨슨등의 신경 정신 질환들의 증상을 개선하였다고 보고하였다. 기존에 치료가 어려웠던 질환들을 똥으로 치료하겠다는 상상은 머지않아 이루어질지도 모르겠다.
치료제 이외에도 분변을 이용한 다양한 시장 또한 주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스마트 변기는 미래에 건강을 예측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현재에도 분변에 혈액 존재 여부를 파악하여 대장염을 진단하는 키트가 출시되어 있는데, 볼일을 볼 때마다 분변에 포함된 다양한 지표들을 변기에서 바로 확인하고 마이크로바이옴을 분석해 준다면 건강 관리에 큰 도움이 될 듯 하다.
과거 학교에서 채변 검사를 통해 기생충 감염 여부를 확인했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사라진 풍경이지만 현재는 분변을 채취하여 보내면 마이크로바이옴을 분석해서 제공해주는 서비스가 점차 일반화되고 있다. 물론 아직 질병을 예측하는데 여러 한계점이 있지만 AI 기술의 접목등으로 점차 그 활용범위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추가로, 말을 못하는 반려동물의 질병을 예측하기 위한 진단법으로 자리매김 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속담을 익히 알고 있다. 평소 똥을 흔하고 더럽다고 하찮게 여기기 보다는, 귀하고 소중하게 그 가치를 미리미리 알아 나가는데 노력한다면 꼭 필요할 때 건강을 위해 긴하게 쓰이는 날이 올 것이다.
<이희태 약사>
-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보건학 박사
- 건일약국 대표약사
- 삼육대학교 약학대학 책임연구원
- 케프리옴 대표
- 유튜브 약드라이브 채널 운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