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운자로’·‘젭바운드’, ‘키트루다’ 제치고 글로벌 매출 판도 변화 확인
- ‘그랩바디-B’ 기술이전 후 직접 에이비엘바이오 지분 투자 참여…국내 첫 사례
- 미국·캐나다 중심 11개 전략 투자 속 아시아 기업은 에이비엘바이오만 포함
- 비만에서 CNS로 연구개발 축 이동…플랫폼 결합이 향후 공동 개발 가능성 열어
[더바이오 성재준 기자] 다국적 제약사 일라이릴리(Eli Lilly, 이하 릴리)가 글로벌 제약사로서는 처음으로 국내 바이오기업에 전략적 지분 투자를 단행하며 주목을 받고 있다. 릴리는 앞서 에이비엘바이오와 ‘그랩바디-B(Grabody-B)’ 플랫폼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한 데 이어, 이번에는 이 회사 지분 투자까지 나서며 협력 범위를 확대했다. 올해 릴리가 직접 투자한 기업 가운데 아시아 지역 기업은 에이비엘바이오가 유일하다. 글로벌 제약사 본사의 국내 바이오기업 직접 투자 1호라는 상징성까지 더해지며 산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릴리, 올해 투자 15곳 중 아시아 기업은 에이비엘바이오 ‘유일’
24일 <더바이오>가 국내 인공지능(AI) 기반 파마 인텔리전스(Pharma Intelligence) 기업인 바이오리서치에이아이(Bio-ResearchAI)에 의뢰해 올해 릴리가 공개한 지분 투자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이번 에이비엘바이오에 대한 지분 투자는 릴리가 올해 직접 지분 또는 인수합병(M&A) 방식으로 투자한 15개 기업 가운데 유일한 아시아 기업 사례다. 에이비엘바이오를 제외한 투자 대상은 미국 기업 13곳과 캐나다 기업 1곳으로 집계됐다. 세네젠바이오(SanegeneBio)는 중국계 배경이 있지만, 미국 법인으로 분류된다.
올해 릴리가 투자한 15개 기업 가운데 M&A 방식으로 편입된 4곳을 제외한 순수 투자 대상은 11곳으로 파악된다. 이들 투자 역시 단순 옵션 계약이 아니라, 파이프라인 및 기술 기반 확장을 전제로 한 ‘참여형 투자’라는 점에서 의미가 다르다.
주요 투자 대상으로는 단백질 설계 기반 플랫폼을 보유한 매그넷바이오메디신(Magnet Biomedicine)과 빅햇바이오사이언스(BigHat Biosciences), 리보핵산(RNA) 치료제 기술을 보유한 크레용바이오(Creon Bio)와 엔토스파마슈티컬스(Entos Pharmaceuticals), 재생의학 및 노화 타깃을 개발하는 주베나테라퓨틱스(Juvena Therapeutics) 등이 있다. 이들 기업은 모두 미국과 캐나다에 위치해 있으며, 파이프라인 확장 및 차세대 성장 분야 구축을 위한 협업 구조가 적용됐다. 특히 아시아 기업에서는 에이비엘바이오만 포함됐다.
이번 사례는 노바티스가 과거 자회사 벤처펀드(Novartis Venture Fund)를 통해 국내 바이오기업에 지분 투자를 진행해왔던 방식과는 대비된다. ‘노바티스 벤처펀드’는 네오믹스, 파멥신, 큐로사이언스 등 초기 단계 기업에 투자한 바 있지만, 이는 기업형 벤처캐피탈(CVC) 구조를 통한 ‘간접 투자’였다. 반면 릴리가 에이비엘바이오의 지분을 전략적으로 직접 취득한 것은 국내에서 첫 사례로, 해외 빅파마의 국내 접근 방식이 기술이전 중심에서 본사 직접 지분 참여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노피·GSK 이어 릴리까지…‘3연속’ 글로벌 기술이전
에이비엘바이오는 사노피와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에 이어 이번에 릴리와도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하며 자사의 플랫폼 경쟁력을 다시 확인했다. 에이비엘바이오는 지난 12일 릴리와 계약금 4000만달러(약 590억원)를 포함해 총 26억6200만달러(약 3조9200억원) 규모의 그랩바디-B 플랫폼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그랩바디-B는 뇌혈관장벽(BBB)을 통과해 약물을 중추신경계(CNS)로 전달할 수 있는 기술로, 비만과 근육질환 등으로의 적응증 확장성이 크고 항체, 단백질, 항체약물접합체(ADC) 등 다양한 제제 형태에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릴리는 해당 플랫폼을 기반으로 CNS 분야를 새로운 성장축으로 설정하고 있으며, 비만 치료제 판매로 확보된 매출 기반과 생산능력이 연구개발(R&D) 추진 속도를 뒷받침할 것으로 전망된다.
릴리는 기술이전 계약에 이어 1500만달러(약 220억원) 규모의 전략적 지분 투자를 진행해 에이비엘바이오 보통주 17만5079주(0.32%)를 취득했다. 해당 지분은 1년간 보호예수가 적용된다.
특히 이번 릴리의 에이비엘바이오에 대한 지분 투자는 단순한 기술 협력을 넘어 향후 공동 개발 가능성까지 포함한 구조다. 이를 통해 국내 바이오기업의 글로벌 협력 방식이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업계에서는 비만에서 CNS로 R&D 관심이 이동하는 흐름과 플랫폼 기술이 맞물렸다는 점에서 전략적인 의미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비만 치료제, 항암제 매출 역전…GLP-1 기반 확장 구도
릴리는 올 3분기 실적에서 비만·당뇨병 치료제인 ‘마운자로(Mounjaro, 성분 터제파타이드)’와 ‘젭바운드(Zepbound, 성분 터제파타이드)’ 매출이 다국적 제약사 MSD(미국 머크)의 면역항암제인 ‘키트루다(Keytruda, 성분 펨브롤리주맙)’를 넘어서는 성과를 기록했다. 두 제품의 합산 매출은 분기 100억달러(약 14조7200억원)를 돌파하며 시장 주도권을 굳혔고, 시가총액은 장중 1조달러(약 1472조원)를 넘어 헬스케어 기업 최초 기록을 세웠다.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기반 치료제의 고성장에 더해 릴리는 BBB 플랫폼을 기반으로 CNS 분야까지 R&D를 확대하고 있어 비만 치료제 성장세가 CNS로 확장되는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편, 릴리는 올해 3분기 글로벌 매출은 176억달러(약 25조9100억원)를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54% 증가했다. 미국 매출은 113억달러(약 16조6300억원), 해외 매출은 63억달러(약 9조2700억원)로 각각 45%, 74% 증가하며 지역별 성장세가 동시에 나타났다. 특히 마운자로와 젭바운드는 각각 109%, 185% 성장해 합산 101억320만달러(약 14조8700억원)를 기록했다. 같은 분기 MSD의 키트루다 매출은 81억달러(약 11조9200억원)에 머물러, 비만 치료제가 항암제를 넘어선 첫 글로벌 매출 역전 사례로 기록됐다. 이는 치료 패러다임뿐만 아니라, 제약산업의 수익 구조 중심이 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로 해석된다.
또 릴리가 개발 중인 경구용(먹는) GLP-1 후보물질인 ‘오포르글리프론(orforglipron)’도 최근 임상3상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확보하며 연내 비만 치료제 허가 신청이 예고되고 있다. 주사제 대신 경구 제형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처방 접근성과 환자 순응도 확대가 예상되며, 기존 시장 성장을 더욱 가속할 변수로 평가된다. GLP-1 계열 경쟁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릴리는 비만·당뇨병·대사질환 영역으로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고 있는 모습이다.
